Dear. H
햇수로 7년째인가. 너와 같은 회사, 같은 팀에 몸담고 일하게 된게 말이다. 분명 팀장님께 너를 추천하고, 네 입사가 확정되기까지의 시간동안에는 분명 우리가 대학시절만큼은 아니어도 각자 먹고 사는 길이 다른 친구들과는 조금 더 많은 시간들을 함께할 수 있으리란 기대에 꽤나 부풀었더랬다. 근데 젠장할 이건 뭐냐. 자그만치 7년이나 일을 하고 나서야 겨우 한달 반 가량을 같은 사무실에 붙어 있을 수 있었다니. 물론 이전에도 몇날 몇일씩 어디서 부대끼고 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조금은 여유로운 상황에서 함께 뒹구르기는 처음이 아니냐. 거 참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가 않는도다. 하기사, 너무 계속 붙어 있었더라면 외려 지겹기도 했겠다마는(웃음)
쨌든 덕분에, 한동안 개인적으로도, 일과 관련된 문제로도 이런저런 풍파에 휩쓸려 꽤나 심란했을법한 가을이었는데 정말로 덕분에 그럭저럭 잘 보낸 것 같다. 이건 고맙지만 굳이 낯 간지럽게 이런저런 말들을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어 그저 이 자리에 혼자 끄적이며 남겨보는 편지다. 당연하지 않으냐. 내가 이런 말을 네 눈 앞에서 한다고 쳐봐라. 기껏해야 '미친거 아냐~' 소리나 듣고 말겠지. 그리고 굳이 할 필요 없는 말이지만, 그저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말이다.
사랑하니까, 좋쟈? 그쟈?
사실 워낙 요상하게도 그 방면으로는 감이 좋은 인간인지라, 네녀석이 뜬금없이 프로젝트 중에 누구 기억하냐고 물었을 때부터 설마란 감은 잡았더랬다. 그리고 다른 놈의 입에서 흘러나온 네녀석의 연애 소식에 그렇게 되었구나 하였더랬지. 누구에게 먼저 이야기를 했고 안했고 그런 유치한 문제를 떠나서, 처음엔 우려만 가득했더랬다. 네가 만나는 그 분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도 걱정했던 이유는 뭐 하나만 들 수도 없다. 10년이 넘은 연애를 마치고 한동안 연애따윈 이제 개나 먹어라 하는 것 같았던 네 모습도 모습이었고, 그분의 상황도 상황이었다. 아마 네 스스로가 더 잘 알겠지만, 누구라도 그저 이야기를 듣고서야 우려란 마음이 먼저 불쑥 일어나게 되는 상황이었지. 나야 말할 나위도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찮게도 둘이 거나하게 취한 날, 밤길을 달려 마주한 그분과 네 모습에, 정말로 오랫만에 보는듯한, 매우 근사하게 잘 어울리는 둘의 모습에 사실 그 다음번 아내님과 함께 만나러 가기 전부터 나는 이런저런 우려들을 이미 내려 놓았더랬다. 이제 겨우 세번인가 만났지만, 적어도 현재까지 내가 본 그분은 백점 만점에 99점 드릴 수 있다. 좋은 사람 같다. 미모도 미모거니와 많이, 활짝 잘 웃는 것, 그리고 이런저런 좌충우돌을 너그럽게 포용하는 모습까지. 외려 내가 더 신났더랬지 뭐냐. 단언컨데 근 10년동안 본 커플중에 가장 근사하게 잘 어울린다. 네가 이런 저런 고민들을 품고서도 거침없이 빠져들만한 이유가 있었던게지. 낄낄.
그 봐라. 사랑하니까, 좋쟈.
복잡한 고민같은건 우선 뒤로 미뤄둬라. 나는 아마도 네가 요즘 그리 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생각해보면 정말로 흔치 않은 기회다. 이런저런 주변 상황과 무관하게 그저 순수하게 누군가가 좋아서, 좋고 좋고 좋아서 만나고 또 만나고. 마음껏 행복해하고 어깨를 으쓱거리는. 어디건간에 데려가서 자랑하고 싶고 그래서 스스로를 조금 더 돌보고 아끼게 되는 그런 사랑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인생에서 한번 올까 말까 한 기회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물며 나이를 서른 중반을 넘긴 남자에게 그런 사랑이란 건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우선은 그 마음 그대로 즐겨라. 어른의 연애라는 것에 너무 구애받지 말아라. 너무 서두르고 조급해하면 외려 좋아할 수 있을 때 충분히 좋아하지도 못한 채 사랑을 망치게 된다. 충분히 행복해하길. 지금의 그 충만함들을 마음껏 느끼길.
물론, 앞으로를, 먼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을 세워 나가는 것도 필요하긴 할게다. 하지만 너무 걱정을 앞세우지는 말아라. 다만 매일 매일의 행복 속에서 확신을 다져나가면 된다. 이 사람이 내게 있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내가 이 사람과 함께 함으로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가를. 나의 미래가 이 사람과 함께여야만 하는 이유를 꾸준히 찾아가고, 거기에 조금씩 확신을 더해가면 된다. 그리고 그 사랑에 긍지를 가지면 된다. 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와 평생을 함께 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것은 무궁무진하게 많아 보이지만, 아주 근원적이고 핵심적인 것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상대와 그 믿음을 공유하고, 상대의 신뢰에 보답할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가지면 된다. 그것만 있다면, 나머지는 모든것이 알아서 그리 이루어지거나, 그렇게 만들어질것이다. 장담컨데.
그러니까, 이런 말을 네놈 얼굴을 보면서 할 수는 없잖나(긁적긁적).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고. 그래도 이놈아, 사랑하니까 좋쟈?
어찌되었거나, 몇 해만의 따땃한 겨울이 되겠구나. 아니, 따땃하기보다 뜨거울까. 뜨거운 겨울이 되길 빈다. 각자 새 일들이 시작되었으니 적어도 내년 2월까지는 보기 쉽지 않겠구나. 아니, 망년회때는 볼 수 있으려나. 어찌되었거나 부디, 굉장히 오랫만에 진심으로 응원하는 커플이라는 영예를 안겨줄테니 행복하게 연애 잘해라. 그리고 절대 잊지 마라. 당구는 내가 이겼다. 네놈은 3연패중이다. 패배의 아이콘놈 연애할 시간 있으면 혼자 동네 당구장 가서 연습이라도 더 해둬라 퀫퀫퀫퀫. 너같은 놈은 엉덩이로 당구를 쳐도 이길 수 있다아 -o- ...
... 헛소리가 길어지는고나. 전력을 다해 사랑하고 온나 애송이놈. 낄낄.
- 승자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