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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08 징크스에 관하여 2

징크스에 관하여

자신의 잘못이나 책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무수한 징크스를 만들어내고 받아들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시험공부를 할때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다거나, 머리를 감지 않는다거나, 심지어 이빨을 닦지 않는다거나 하는 징크스를 만들어내는 이유가 그 근원을 찾아보자면 어떤 일에 대한 실패, 좋지 못한 결과에 직면하게 되었을때 스스로의 책임을 인정하기 두려워함이기 때문이란 얘기다. 아 생각해보니 그저께 참다 못해 점심먹고 양치를 했어, 아 깜빡 하고 미용실에 들려버렸네, 아 시험날 아침인데 엄마가 미역국 끓여줬어, 우리 엄만 계몬가봐(?) 뭐 이런 식의 책임전가, 책임회피가 너무도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원치 않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알게든 모르게든 무수한 징크스들을 만들어내기도, 보편적으로 널리 알려진 징크스들을 따르기도 하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기본적으로 그런 징크스 같은것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항상 이야기하고 강조하는 것인데, 스스로의 잘못과 책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만큼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때 스스로의 책임을 회피해버리는 것 만큼 그 개인의 성장에 독이 되는 일이 따로 또 없다.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있다가 우연찮게 똥을 택하게 되었으면 최소한 똥을 택한것이 나의 잘못이었구나, 다음에 또 똥을 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도는 얻어야 남는 장사가 되는 것이지, 넌 내게 똥을 줬어 하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해버린다면 남는것은 똥과 똥을 택할때까지의 아까운 시간밖에 없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가 아닌가.

하지만 사람이란것이 약하고 약한 동물인지라, 언제나, 항상, 스스로에게 걸리는 부하를 고려하지 않고 100% 스스로의 책임을 모조리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때로는 그런 강직함이 스스로에게 오히려 독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객관적으로 따져 보면 그 사람의 잘못도 있지만 이런저런 외적인 불운같은것도 있는것이고 한데 너무 스스로의 잘못에만 몰입해버린 나머지 필요 이상으로 구덩이를 깊게 판다거나,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를 자책하고 깊이 절망해버린다거나 하는 경우가 그런 것이다. 요약하자면 어떤 상황에서의 적당한 정도의 책임회피는 정신건강에 오히려 이롭다. 스스로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고치려 노력할 수 있을만치의 성숙한 인격체라면 순간의 책임회피 이후에도 언젠가는 그 상황에서 스스로의 잘못을 분별해내고 적당한 만치의 반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적당한 정도라는 것이 무척이나 정하기 어려운, 위태로운 외줄타기같이 아슬아슬한 어떤 정도라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오늘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내고 스스로를 가둬버리게 되는 어떤 징크스들은 에지간하면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더라도, 세상에 널리 알려진, 보편적인 어떤 징크스들에 대해 반드시 '헹 - 난 그딴 징크스같은거 믿지 않는다는!' 이라고 고집을 피울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시험 망치고 나서 어머니의 미역국을 원망하는 것은 못난 일이지만 괜히 미역국 먹고 '찝찝한 마음으로' 시험을 보러 가서 좋은 이유도 없는 것 아니겠는가. 특히나 어떤 일에 대해 잘못된 결과가 돌아올 경우, 스스로가 입게 될 데미지가 클 것이라고 예상이 된다면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그런 보편적인 징크스를 피하는 것이 좋다. 쪽지시험 보는 날 미역국 먹고 갔다고 큰일 나는 것 아니지만 수능날 아침에 미역국을 완샷하고 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평생이 걸린 문제인데 일주일 한달정도 때를 안 민들 어떻겠는가! 양치야 뭐 입으로 시험 볼 것도 아니지 않은가!(...물론, 권하는 건 아니다)

이글루에서 쓴 글중에 덕수궁 돌담길에 돌을 던지랴라는 글이 있었다. 대충 이별 후 힘들고 괴로운 마음에서야, 덕수궁 돌담길에든 뭣이든 책임이라도 돌리고 싶어지는게 인지상정 아니겠냐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는, 그런 우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보편적인 징크스같은것들에 오기로 콧방귀를 뀌는 일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애인한테 신발같은것은 굳이 사줘야 할 이유가 없고, 사방 천지에 좋은 데이트 코스가 널렸는데 굳이 덕수궁 돌담길을 같이 걸어야 하는 이유가 없다 그얘기다. 많은 경우에, 다수의 사람들이 얘기한다고 그걸 그대로 따라하는건 썩 권장해주고 싶지 않지만, 다수의 사람들의 경험이 녹아있는 어떤것들을 굳이 완전히 무시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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