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이야기 (3)

세시까지 딱 55분 남았으니 오늘은 딱 그만큼만 글을 써 볼까 - 라고 생각을 하고 써야지만 뭐라도 쓸 수 있게 되는 하루하루다. 남들은 연말 연시 연휴다 뭐다 쉬고 있을 적에도 그냥 매일같은 하루처럼 출근했던지라 해가 바뀐 느낌이 실감도 나지 않을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 어쨌든 겨울이 가기 전에 강원도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않으면 다시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감흥이 살아날 것 같지 않아서 황급히 이어 써본다. 처음 쓰려고 마음 먹었을때는 그 시절의 모든 기억들을 다 끄집어내 보려고 했었는데 그건 역시 쉽지 않을 듯. 용두사미격으로 마무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잠깐 생각을 해 보면서. 


강원도에서 함께 부대꼈던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Best & Worst 로 나눠 쓰려고 하다가 J선배 얘기로 글 하나를 통째로 할애했는데 사실 이전 글에서도 얘기했듯 그 냥반의 비중이 그만치 크긴 했다. 그래서 오늘은 기억나는 순서대로 Best & Worst 였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쭉쭉 해보는걸로. 


Best 2. 친구 H


어쩌다가 다른 회사 다니고 있던 놈을 같은 팀으로 끌어들인 이후 벌써 7년째 같은 팀에서 서로 의지하기도, 아웅다웅하기도 하며 지내고 있는 친구 H. 뭐 녀석이야 말할 나위 없는 개그캐... 니 일일이 다 쓰자면 한도 끝도 없다. 딱 강원도 프로젝트에서 있었던 일만 얘기하고 넘어가는 걸로. 


나는 프로젝트 정식 멤버로 4개월동안 강원도에서 굴렀더랬고, 녀석은 중간에 한달 정도 팀에서 지원 나왔더랬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실연당하기 전에 와서 상태는 양호할 때였는데 제법 바쁠때라 뭐 거하게 놀진 못하고 다만 매일 술이나 마시고 그랬더랬다. 하지만 Best 2로 꼽을 수 있는건 단 하나의 에피소드와 몇마디의 빵빵 터지는 말들이었는데. 


프로젝트 중기, 주중엔 강원도에서 생활하고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오던 생활을 반복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 일요일날 녀석과 나의 대학시절 같은 모임 선배가 상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우리는 상가집에 갔다가 동서울 터미널 근처에서 같이 자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서 같이 내려가는 걸로 계획을 짰더랬다. 원래 녀석의 지원 계획은 1주였는데 그게 무려 한달로 늘어져버린 통에, 녀석은 처음 챙겨갔던 속옷을 2주째 입고 있던 상황이었던지라 상가집에 들렀다가 나오면서 터미널 근처에서 양말과 속옷을 샀었더랬다. 뭐 술도 신나게 퍼마셨더랬지. 그리고 근처 모텔에서 둘이 방을 잡고 한잔 더 마신 후 잠이 들고... 아침에 어이쿠야 소리와 함께 우당탕탕 준비해서 뛰쳐나와 버스에 오르고... 딱 버스에 오르고 10분 후에 녀석이 하는 말. 


'으... 빤쓰를 놓고 왔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사놨던 양말과 속옷을 모텔방에 내팽개쳐두고 왔던 것. 결과로 녀석은 강원도에 가서 다시 눈물을 흘리며 양말과 속옷을 샀어야 했었다는 슬픈 전설. 그리고 아마, 바지도 단벌로 3주정도까지 버텼더랬지. 


기억에 또 남는거라면, 녀석은 지원이 끝나서 철수하고 나중에 내가 실연당해서 반폐인 되어 있다가 주말에 올라갔을 때였다. 그땐 뭐 눈만 뜨면 술로 연명하던 시절이었던지라 터미널 도착 시간에 맞춰 녀석보고 술먹자고 나와 있으라고 불러 놨었는데... 한 일주일 면도도 안하고 밥도 제대로 안먹고 올라온 나를 보더니 녀석이 흠칫 하더니 하는 말. 야 너 그러다 죽어 - 거기까진 그냥 우려섞인 말이었으나 거기에 한마디 덧붙이는데, '야, 근데 너 팀에 복귀해서 팀장님 보러 갈 땐 꼭 그대로 그러고 가라 -_-' ㅠㅠ 그래 뭐. 실행에 옮기진 못했지만 그랬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철수하자마자 휴가라도 받았을지 모르는 것을 - 뭐 아무튼, 녀석의 얘기는 이정도로 마무리. 문득 생각이 난 건데 나중에 녀석 관련 에피소드의 특집편이라도 써볼까. -_-a


Best 3. 무지막지 화끈했던 개발자 Y 씨


워낙 척박한 바닥인지라 프로젝트 한번 했다 하면 본격 남자 프로젝트(...)가 되어버리기 일쑤고(나만 그런가) 특히 여자 개발자는 상대적으로 귀한 바닥인데 놀랍게도 강원도에서 처음 만난 개발자 Y씨는 바로 그 귀하다는 여자 개발자 분이었다. 뭐 화끈하다고 표현해서 오해가 있을런지 모르겠는데 첫인상이 뭐 섹시 다이너마이트라거나 뭐 그런거 아니다. 첫 인상은 말할때 사투리가 좀 섞였구나 하는 느낌 말고는 그냥 어 그래 그렇구나 싶은, 딱히 특별할 것 없는 그런 인상이었는데. 


이... 이분, 볼수록 매력 포텐이 팍팍 터지더라. 


프로젝트 초반에 다들 모텔방 계약하고 그러고 있을 때 혼자 당당히 사무실 바로 맞은편 사북장 여관에 자리를 떡하니 잡고는 시종일관 여관 시설이 괜찮다면서 홍보하는 통에 거기에 혹한 나와 J 선배도 한달만에 여관으로 방을 옮겼더랬지. 뭐 둘다 별로 예민한 성격은 아닌지라 어 뭐 그럭저럭 괜찮은데 뭐 그리 추천할 정도는? 이라고 의문에 빠질 무렵 그녀가 여관 아주머니께 투숙객을 더 데려오면 방값 할인을 받는 모종의 거래를 (-_-;) 했다는 얘기를 듣고 오왕 님 생활력 강함요 했던 게 시작이었더랬고. 


좀 지나서 술도 몇잔 같이 먹고, 알고 보니 그녀는 시골에서 자란, 무려 7~9 남매 중에 다섯째랬나 여섯째랬나. 강인한 생활력이 이해가 가던 시점이었다. 아 근데 성격이 진짜 화끈 그 자체였다. 한번은 월요일에 주말에 뭐했냐고 물었더니 이번 주말엔 술도 안마시고 그냥 뭐 하고 그랬다는 거야. 근데 조금 더 얘기하다가 우연히 그러고보니 어제 동생이랑 창고 정리하다가 소주 한병 했는데~ 란 얘기를 하길래 아니 술 안마셨다면서요! 라고 추궁하니 오히려 나를 굉장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소주 한병이 술인가예!!!!!


우와 님 좀 짱인듯. 하긴 프로젝트 팀 회식을 하거나 해서 같이 술도 제법 먹은 적도 있었는데 오왕 엄청 잘 놀기만 하고 술버릇도 없이 겁나 깔끔하다. 아 또 그런 적도 있었지. 한번은 금요일에 버스 예매를 못해서 서울 올라오는 길에 다른 개발자 한분이랑 같이 그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올라오게 되었더랬다. 이래저래 일이 겹쳐서 출발시간이 늦어지다가 거의 야밤에 출발하게 되었는데... 흐미 뭐죠? 이 터프한 드리프트는? 이거 액션영화에서나 나오고 그런거 아니었나요? ㅋㅋㅋㅋ 강원도였으니 눈이 좀 많이 왔었겠나. 다행이 도로는 얼지 않았더래도 이래저래 눈들이 사방에 가득 덮여 있는 그 도로를 겁나게 밟아주시는거야. 난 뒤에서 철없이 오왕 이러고 있었고 앞에 같이 탄 개발자분은 슬슬 표정이 안좋아지고 있었는데 그 타이밍에 딱 터지는 그녀의 한마디. 


아 미안요 제가 야맹증이 좀 있어가지고 ㅎㅎㅎㅎ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에 같이 타고 있던 그냥반이 순간 손잡이를 꾸왁 잡는걸 나는 봤어. 아무튼 그 터프한 운전 덕분에 서울까지 즐겁게 올라왔으니 그걸로 된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Y씨를 '지인'의 바운더리까지 포함시킬 수가 없었던, 당시 넋 나가 있던 상황과 전국을 떠돌던 생활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연락은 끊겼지만 정말이지 일도 잘 하셨더랬고, 그정도면 척박한 강원도에서의 Best 3에는 꼽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게지. 


Best 4 (J선배가 늘상 말하길) 반경 10Km 이내에서 최고 미인. 투다리 아주머니.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Best others. 


스페셜 땡쓰 투 같은 느낌이지만 - 당시 일이야 그렇다치고 생활은 꽤나 제멋대로였던 나와 J 선배를 포용해 주시면서 프로젝트를 잘 끌고 나가신 L부장님, 협력사였는데 죽이 맞아서 PL 급들 회식 가고 그러면 따로 같이 술마시러 가곤 했던 L대리님, 반폐인 생활에 거의 매일같이 술병이 굴러다니던 방을 별다른 얘기도 없이 잘도 치워주셨던 사북장 여관 아주머니. 실연당하고 강원도에 내려와서 몇일 내내 밥을 입에도 안대고 술만 퍼마시다 사지가 떨려 기어가다시피 들어갔는데 인생의 육개장 맛을 보여주신 김밥천국 아주머니 외 참 좋았던 분들이 많았더랬지. 근데 더이상 놀 수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급급하게 여기서 마무리. 문득 고민되네. Worst 는 다 지난 일인데 굳이 써야 되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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