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1.16 헬로 미스터 탱탱탱. 10
  2. 2015.01.07 강원도 이야기 (3) 2

헬로 미스터 탱탱탱.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그 시절엔 그랬다. 왜 다들 그런  경험들은 한번씩들 있지 않은가? 그럭저럭 먹고 사는 문제 없이 살아가다가, 정확히 그것이 어떤 일인지 인지할 수는 없는 나이때 쯔음에 갑자기 먹고사니즘 혹은 생활의 여유에 큰 트러블이 발생하는 일 말이다. 흔한 원인으로는 채무 보장이라거나, 가족 중 누군가의 큰 병이라거나 혹은 가족 중 누군가의 예상치 못한 사고라거나, 부모님 중 누군가가 지인에게 뒤통수를 맞거나, 가정 경제의 핵심 인물이 갑작스런 실직을 당하거나. 뭐 결론적으로 그런 저런 이유들로, 살짝 일반적이진 않아도 있을 법 한 그런 이유로 인해 우리집은 한 번 망했다. 부모님이 평생 모은 돈 약 5억 가량 - 부동산 포함 - 이 허공으로 증발하는 걸 보며 나는 지금 생각해도 꽤나 한가롭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야, 우리집 제법 잘 살았구나' 따위의 독백 말이다.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차피 대학 졸업반이었으니 당장 등록금이 없어서 졸업을 못 하고 그럴 상황은 아니었고, 애초에 대학 졸업하고 나서도 부모님께 손 벌려가며 어쩌고 해보려는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환경이건 정신세계건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가 없다. 번듯했던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반지하 빌라 생활을 시작한거야 뭐 지금 생각해도 별로 대단스레 불편치는 않았다. 넓고 책상도 침대도 알차게 들어와 있었던 바에서 쭉 뻗고 누우면 딱 몸 길이만한 크기의 방으로 바뀐건 좀 불편하긴 했어도 워낙 집에 붙어 있질 않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용돈이 끊긴건 졸업 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며 그래도 밥은 굶지 않고 다녔더랬고, 또 딱히 집이 망해서 돈이 없다는 것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 끼니는 챙겨주던 친구들이 있었다. 다만 그 시절에 무척이나 나를 괴롭혔던 것들은 대충 다음 같은 것들이다. 졸업반쯤 해서 일년정도 휴학하고 어쩌고 하려던 모든 계획들이 다 먼지로 변해버려서 모든 계획들을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짜나가야 했던 것 - 심지어 졸업 후 취업하면 바로 결혼하려던 계획까지 포함 -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증가로 트러블이 잦아진 당시의 연애문제, 그리고 결정적으로 볓이 잘 들지 않는 반지하 집을 가득 메우고 있었던 부모님의 슬픔과 분노들이었다. 집을 나서서는 엉켜버린 계획들을 수정하고 수습해나가는데 진이 빠졌고, 집에 들어와서는 집안을 내리누르고 있는 그 무거운 절망의 공기에 답답해서 좀처럼 쉬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던 나날들이었다.

그래도, 술과 친구가 있었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친해졌던 것도 아닌데 어째서인지 제각각 다른 가정의 문제들 두어 너덧개쯤은 가지고 있었고 어쩌면 그 공통분모로 인해 친해졌던 녀석들이었다. 뭐랄까, 워낙 제각각의 문제들을, 그것도 남들이 들으면 꽤나 심각한 문제들을 품고 있었던 녀석들이라 녀석들 앞에서 딱히 이런저런 상황을 이야기해도 그게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고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이 개그 포인트다. 우리가 처음 친해지고 친구란 이름으로 지내온 어떤 날들에는 반드시 그 중 누군가가 본인이 처한 그 상황으로 인해 술을 퍼먹건 맨정신이건 무언가 사건을 일으켰고, 그게 다시 안주거리가 되어 술자리를 부르고, 우리들이 '고통의 희화화' 혹은 '극도의 허무에서 나오는 초절정 저질 플레이'라고 부르던 그 사건들을 그 시기에 가장 많이 일으킨게 바로 나 - 정도의 일이 되어버린 거다. 마치 무슨 만화처럼 '난 부모님의 별거 카드를 꺼내고 턴을 마치겠다' '그럼 난 패가망신 카드로...' 같은 그런 느낌이었달까. 그래, 어쨌든 그 시기의 주인공은 나였다. 내가 가장 많은 사건 사고를 일으키고, 지금도 술자리 3차쯤 되면 최고급 안주처럼 등장하는 무수한 에피소드를 만들었던 시기인 거다. 어쩌면 그렇게 그 시절을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을 거다.

바로 그 시기의 에피소드 중에 단연 최고로 꼽는 이야기다. 발단은 어느 저녁이었다. 언제나처럼 집안 공기를 묵직하게 내리누르던 아버지의 분노가 또 한번 터졌더랬다. 그리고 그날따라 그 분노의 화살은 나를 향했다. 그리고 또 언제나처럼 치밀어오는 억울함은 가슴에 꾹꾹 내리누른채 집을 나왔다. 당연한 수순처럼 당시 자취하던 S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 앞뒤 자르고 '좀 재워다오 -_-' 라고 했고, 급하게 나오느라 입고 나온 츄리닝에 쓰레빠 차림 그대로 서울의 반대편에 있던 녀석의 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녀석의 집에 뒹굴다가, 저녁때쯤에 또 어디선가에서 술을 잔뜩 퍼마시고 집으로 향했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중간중간 필름이 끊길정도로 퍼마신 상태에서 억지로 몸을 끌고 거의 새벽이 다 되어 집에 들어가서 뻗었더랬고, 다음날의 우환이 두려워서 몇시간이나 잤을까, 눈이 떠지자마자 아픈 속과 흔들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학교로 갔었더랬다. 다행히 날씨가 이른 아침이어도 밖에서 잔다고 입 돌아가고 할 정도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던 지라 학과 건물 밖 야외 벤치에 드러누워서 모자란 잠을 청하다가 친구놈에게 전화를 걸어 몇시에 깨워달라고 얘기를 하고서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더랬다. 그리고 두어시간인가 지났나, 도착한 친구놈이 발로 툭툭 차며 나를 깨웠고, 겨우겨우 몸을 추슬러서 아지트 역활을 했던 S녀석의 자취방에 다시 찾아가 널브러져 있던 중에.

얼마나 또 지났을까, 다시 또 깨우는 S녀석의 발짓(?)에 눈을 떠보니 그놈들이 다 모여있었다. 그리고 잠이 덜 깨어 녀석들을 하나씩 쳐다보는데 뭔지 모르겠지만 이미 얼굴들에 다 사악한 웃음들이 가득. 불길한 예감이 가시기도 전에 앙숙처럼 으르렁대고 지내던 S2녀석이 자자, 이제 그럼 다같이 들어볼 시간이다 하고 컴퓨터에 가서 앉는거다. 상황 파악이 안되어 뭐여 - 라는 표정을 짓고 있던 내게 돌아온건 닥치고 들으라는 말 뿐. 그리고 이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건 바로 만취한 나의 목소리였다. 사연인즉슨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제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S2녀석에게 전화를 걸었고, 통화 내용이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그러나 빵빵 터지는 내용이라 녀석이 통화내용을 녹음해서 MP3로 떠 온 거다. 마귀같은 색휘... 라고 느끼기도 전에 흘러나오고 있는 내 말들에, 정말이지 나도 미친듯이 웃을 수 밖에 없었는데 통화내용을 그대로 옮겨보기엔 너무 육두문자가 많고, 일부만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S2 : 여보세요?
나 : 이런 개에에에에에에에에에 XXX ABCDEFGHIJKLMNom, 카아아아악 퉤
S2 : 크푸푸풉 뭐여. 또 어디서 술이라도 처먹은 거냐.
나 : 이런 씨부랄 탱탱부랄같은 놈, 개에에에에에에 XXX ABCDEFGHIJKLMNom 카악 퉤.
S2 : 크푸푸풉 아 미친X, 너 이거 녹음한다?
나 : 음? (급 정상 목소리로) 근데 넌 누구냐? 장사(다른 친구 이름)야?
S2 : 뭔소리여 나 S2잖아.
나 : 이런 씨부랄 탱탱부랄같은 놈, 개에에에에에에 XXX ABCDEFGHIJKLMNom 카악 퉤.

(이후 약 3분간 넌 누구냐? - 나야 - 개에에에 반복)

S2 : 아 근데 이 미친X가 크푸푸풉(이미 미친듯 웃고 있음) 어딘데?
나 : 어딘지는 알아서 뭐하냐? 이런 개에에에 (생략) 퉤
S2 : 아 지랄, 빨리 집에 기어들어가서 자~
나 : ...
S2 : ...여보세요?
나 : 집?
S2 : ?
나 : 후... 집에 들어간다고... 내 몸 하나 눞힐 곳이나 있겠냐이...
S2 : (잠깐 숙연해짐)
나 : 음? 근데 넌 누구냐? 장사야?

(이후 약 3분간 넌 누구냐? - 나야 - 개에에에 반복)

S2 : 푸푸푸푸푸풉 야 암턴 닥치고 빨리 들어가. 이거 낼 학교에 들고 간다.
나 : 후... 야, 내가 있잖냐... 하도 빡이 쳐서...
S2 : 그래서?
나 : 지나가는 차를 발로 깔까 하다가!!!!!!!!!!!!!!!!!!!!!!!
S2 : 야야야 워워워
나 : 돈이 없어서~~~~~~~~~~~~~~~~~~~~~~~~~~~~~~~~~~~~
나 : 차지도 못하고~~~~~~~~~~~~~~~~~~~~~~~~~~~~~~~~~~
나 : 참고, 참고, 또 참고~~~~~~~~~~~~~~~~~~~~~~~~~~~~
S2 : 크푸푸푸푸푸푸푸푸푸풒푸푸푸푸풉 (숨 넘어가는 중)

글로 쓰니까 느낌이 안 살긴 하는데...이쯤에서 녹음은 끝나 있었다. 방 안은 다들 거의 눈물을 질질 흘려 가며 쓰러지던 지경. 물론 나도 정말 미친듯이 웃었더랬다. 아니, 처음엔 그랬다. 근데 정말 웃기게도, 민망함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에 미친듯이 웃다가 그냥 막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솔직히 울었더랬다. 근데 다행스럽게도, 다들 너무 웃다가 눈물을 질질 흘려가며 웃고 있었던 통에 눈물 나는게 티가 안났어. 결국 그렇게 웃음 반 눈물 반으로 청취를 마무리하고는, 고기나 구워먹자며 없는 돈을 끌어모아 삼겹살을 사러 갔다(자취방이 옥탑방). 그리고 고기를 먹는 내내 내가 한점 먹어볼라치면 '넌 고기나 구워 이뇬아 -_-' 라고 갈굼을 당했더랬지. 뭐 굴하지 않고 먹긴 했지만.

이 에피소드가 최고였던건 이게 딱 그 시절의 상징과 같은 에피소드이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에서건간에 한없이 괴롭고 슬프고, 근데 다함께 모여서 같이 웃고 떠들다보면 그게 그렇게 웃으며 지나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지던 시절. 마치 상처 위에 밴드를 붙이듯, 괴롭고 힘든 기억에 빵빵 터지는 웃긴 에피소드들을 살포시 덮어놓고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던 시절. 그 시절의 상징과도 같은 에피소드였던 것이다. 지금도 술자리에서 가끔 누군가가 선창을 하곤 한다. 지나가는 차를 발로 깔까 하다가~ -o- 그럼 나머지가 일제히 따라하지. 돈이 없어서~~~~~~~ -o- -o- -o- 남들이 보면 저 저 아저씨들 저거 술 취해서 뭐하는 짓들이야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만이 공유하는 그 시절의 기억. 아마도 살아가면서 잊지 못할. 삶이라는게 끝없는 굴곡 아닌가. 살아가면서 힘들고 괴로운 순간들을 만날 적 마다 과거의 상처가 욱씬거리는 날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묵은 상처들이 아파올 쯔음이면 마치 셋트메뉴처럼 따라붙어 올라오는 괴이한 에피소드들 때문에, 그렇게 마냥 아프지만은 않아도 되는 것. 어쩌면 그게 그 시절의 바보짓들이 내게 남겨준 가장 큰 선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기에 마무리로는 저 에피소드의 '여파'로 인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끝내련다. 저 사건이 있고 한달인가 지났을까. 갑자기 S2 녀석이 말을 꺼낸다.

S2 : 야야, 내가 그 녹음파일을 뜨느라 컴퓨터 바탕화면에 올려놨거든.
나 : 에이 미친(...) 내가 지우라고 했냐 안했냐
S2 : 근데, 내 여동생이 그걸 들어버렸다

... 그 이후로, 나는 녀석네 동생에게, 이름을 말하면 몰라도 야 왜 그 탱탱탱... 하면 '아! 그 탱탱탱 아저씨!' 라고 알게 되었다는, 슬픈 전설로 마무리. 망할놈아 결혼식때 부를 생각도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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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이야기 (3)

세시까지 딱 55분 남았으니 오늘은 딱 그만큼만 글을 써 볼까 - 라고 생각을 하고 써야지만 뭐라도 쓸 수 있게 되는 하루하루다. 남들은 연말 연시 연휴다 뭐다 쉬고 있을 적에도 그냥 매일같은 하루처럼 출근했던지라 해가 바뀐 느낌이 실감도 나지 않을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 어쨌든 겨울이 가기 전에 강원도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않으면 다시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감흥이 살아날 것 같지 않아서 황급히 이어 써본다. 처음 쓰려고 마음 먹었을때는 그 시절의 모든 기억들을 다 끄집어내 보려고 했었는데 그건 역시 쉽지 않을 듯. 용두사미격으로 마무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잠깐 생각을 해 보면서. 


강원도에서 함께 부대꼈던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Best & Worst 로 나눠 쓰려고 하다가 J선배 얘기로 글 하나를 통째로 할애했는데 사실 이전 글에서도 얘기했듯 그 냥반의 비중이 그만치 크긴 했다. 그래서 오늘은 기억나는 순서대로 Best & Worst 였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쭉쭉 해보는걸로. 


Best 2. 친구 H


어쩌다가 다른 회사 다니고 있던 놈을 같은 팀으로 끌어들인 이후 벌써 7년째 같은 팀에서 서로 의지하기도, 아웅다웅하기도 하며 지내고 있는 친구 H. 뭐 녀석이야 말할 나위 없는 개그캐... 니 일일이 다 쓰자면 한도 끝도 없다. 딱 강원도 프로젝트에서 있었던 일만 얘기하고 넘어가는 걸로. 


나는 프로젝트 정식 멤버로 4개월동안 강원도에서 굴렀더랬고, 녀석은 중간에 한달 정도 팀에서 지원 나왔더랬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실연당하기 전에 와서 상태는 양호할 때였는데 제법 바쁠때라 뭐 거하게 놀진 못하고 다만 매일 술이나 마시고 그랬더랬다. 하지만 Best 2로 꼽을 수 있는건 단 하나의 에피소드와 몇마디의 빵빵 터지는 말들이었는데. 


프로젝트 중기, 주중엔 강원도에서 생활하고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오던 생활을 반복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 일요일날 녀석과 나의 대학시절 같은 모임 선배가 상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우리는 상가집에 갔다가 동서울 터미널 근처에서 같이 자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서 같이 내려가는 걸로 계획을 짰더랬다. 원래 녀석의 지원 계획은 1주였는데 그게 무려 한달로 늘어져버린 통에, 녀석은 처음 챙겨갔던 속옷을 2주째 입고 있던 상황이었던지라 상가집에 들렀다가 나오면서 터미널 근처에서 양말과 속옷을 샀었더랬다. 뭐 술도 신나게 퍼마셨더랬지. 그리고 근처 모텔에서 둘이 방을 잡고 한잔 더 마신 후 잠이 들고... 아침에 어이쿠야 소리와 함께 우당탕탕 준비해서 뛰쳐나와 버스에 오르고... 딱 버스에 오르고 10분 후에 녀석이 하는 말. 


'으... 빤쓰를 놓고 왔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사놨던 양말과 속옷을 모텔방에 내팽개쳐두고 왔던 것. 결과로 녀석은 강원도에 가서 다시 눈물을 흘리며 양말과 속옷을 샀어야 했었다는 슬픈 전설. 그리고 아마, 바지도 단벌로 3주정도까지 버텼더랬지. 


기억에 또 남는거라면, 녀석은 지원이 끝나서 철수하고 나중에 내가 실연당해서 반폐인 되어 있다가 주말에 올라갔을 때였다. 그땐 뭐 눈만 뜨면 술로 연명하던 시절이었던지라 터미널 도착 시간에 맞춰 녀석보고 술먹자고 나와 있으라고 불러 놨었는데... 한 일주일 면도도 안하고 밥도 제대로 안먹고 올라온 나를 보더니 녀석이 흠칫 하더니 하는 말. 야 너 그러다 죽어 - 거기까진 그냥 우려섞인 말이었으나 거기에 한마디 덧붙이는데, '야, 근데 너 팀에 복귀해서 팀장님 보러 갈 땐 꼭 그대로 그러고 가라 -_-' ㅠㅠ 그래 뭐. 실행에 옮기진 못했지만 그랬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철수하자마자 휴가라도 받았을지 모르는 것을 - 뭐 아무튼, 녀석의 얘기는 이정도로 마무리. 문득 생각이 난 건데 나중에 녀석 관련 에피소드의 특집편이라도 써볼까. -_-a


Best 3. 무지막지 화끈했던 개발자 Y 씨


워낙 척박한 바닥인지라 프로젝트 한번 했다 하면 본격 남자 프로젝트(...)가 되어버리기 일쑤고(나만 그런가) 특히 여자 개발자는 상대적으로 귀한 바닥인데 놀랍게도 강원도에서 처음 만난 개발자 Y씨는 바로 그 귀하다는 여자 개발자 분이었다. 뭐 화끈하다고 표현해서 오해가 있을런지 모르겠는데 첫인상이 뭐 섹시 다이너마이트라거나 뭐 그런거 아니다. 첫 인상은 말할때 사투리가 좀 섞였구나 하는 느낌 말고는 그냥 어 그래 그렇구나 싶은, 딱히 특별할 것 없는 그런 인상이었는데. 


이... 이분, 볼수록 매력 포텐이 팍팍 터지더라. 


프로젝트 초반에 다들 모텔방 계약하고 그러고 있을 때 혼자 당당히 사무실 바로 맞은편 사북장 여관에 자리를 떡하니 잡고는 시종일관 여관 시설이 괜찮다면서 홍보하는 통에 거기에 혹한 나와 J 선배도 한달만에 여관으로 방을 옮겼더랬지. 뭐 둘다 별로 예민한 성격은 아닌지라 어 뭐 그럭저럭 괜찮은데 뭐 그리 추천할 정도는? 이라고 의문에 빠질 무렵 그녀가 여관 아주머니께 투숙객을 더 데려오면 방값 할인을 받는 모종의 거래를 (-_-;) 했다는 얘기를 듣고 오왕 님 생활력 강함요 했던 게 시작이었더랬고. 


좀 지나서 술도 몇잔 같이 먹고, 알고 보니 그녀는 시골에서 자란, 무려 7~9 남매 중에 다섯째랬나 여섯째랬나. 강인한 생활력이 이해가 가던 시점이었다. 아 근데 성격이 진짜 화끈 그 자체였다. 한번은 월요일에 주말에 뭐했냐고 물었더니 이번 주말엔 술도 안마시고 그냥 뭐 하고 그랬다는 거야. 근데 조금 더 얘기하다가 우연히 그러고보니 어제 동생이랑 창고 정리하다가 소주 한병 했는데~ 란 얘기를 하길래 아니 술 안마셨다면서요! 라고 추궁하니 오히려 나를 굉장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소주 한병이 술인가예!!!!!


우와 님 좀 짱인듯. 하긴 프로젝트 팀 회식을 하거나 해서 같이 술도 제법 먹은 적도 있었는데 오왕 엄청 잘 놀기만 하고 술버릇도 없이 겁나 깔끔하다. 아 또 그런 적도 있었지. 한번은 금요일에 버스 예매를 못해서 서울 올라오는 길에 다른 개발자 한분이랑 같이 그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올라오게 되었더랬다. 이래저래 일이 겹쳐서 출발시간이 늦어지다가 거의 야밤에 출발하게 되었는데... 흐미 뭐죠? 이 터프한 드리프트는? 이거 액션영화에서나 나오고 그런거 아니었나요? ㅋㅋㅋㅋ 강원도였으니 눈이 좀 많이 왔었겠나. 다행이 도로는 얼지 않았더래도 이래저래 눈들이 사방에 가득 덮여 있는 그 도로를 겁나게 밟아주시는거야. 난 뒤에서 철없이 오왕 이러고 있었고 앞에 같이 탄 개발자분은 슬슬 표정이 안좋아지고 있었는데 그 타이밍에 딱 터지는 그녀의 한마디. 


아 미안요 제가 야맹증이 좀 있어가지고 ㅎㅎㅎㅎ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에 같이 타고 있던 그냥반이 순간 손잡이를 꾸왁 잡는걸 나는 봤어. 아무튼 그 터프한 운전 덕분에 서울까지 즐겁게 올라왔으니 그걸로 된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Y씨를 '지인'의 바운더리까지 포함시킬 수가 없었던, 당시 넋 나가 있던 상황과 전국을 떠돌던 생활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연락은 끊겼지만 정말이지 일도 잘 하셨더랬고, 그정도면 척박한 강원도에서의 Best 3에는 꼽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게지. 


Best 4 (J선배가 늘상 말하길) 반경 10Km 이내에서 최고 미인. 투다리 아주머니.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Best others. 


스페셜 땡쓰 투 같은 느낌이지만 - 당시 일이야 그렇다치고 생활은 꽤나 제멋대로였던 나와 J 선배를 포용해 주시면서 프로젝트를 잘 끌고 나가신 L부장님, 협력사였는데 죽이 맞아서 PL 급들 회식 가고 그러면 따로 같이 술마시러 가곤 했던 L대리님, 반폐인 생활에 거의 매일같이 술병이 굴러다니던 방을 별다른 얘기도 없이 잘도 치워주셨던 사북장 여관 아주머니. 실연당하고 강원도에 내려와서 몇일 내내 밥을 입에도 안대고 술만 퍼마시다 사지가 떨려 기어가다시피 들어갔는데 인생의 육개장 맛을 보여주신 김밥천국 아주머니 외 참 좋았던 분들이 많았더랬지. 근데 더이상 놀 수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급급하게 여기서 마무리. 문득 고민되네. Worst 는 다 지난 일인데 굳이 써야 되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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